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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산 실상사 역사

 


지리산 북쪽 남원시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호국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매우 아담한 절로, 쌍 석탑과 하나의 석등과 조그마한 전각들이 있을 뿐이지만, 과거에는 상당히 규모가 컸던 절로 추정된다. 

심지어는 2000년 즈음에야 국내에서 흔치않은 규모의 목탑지가 발견되었다.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지장대사의 제자인 증각대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그의 고향이었던 지금의 자리에 실상사를 건립했다. 

증각은 선종의 승려로, 그가 세운 아홉개의 절인 구산선종의 첫번째가 이 실상사다.

흥덕왕은 이 절을 세울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줬고 왕은 태자인 선광과 함께 이 절에 귀의했다. 

이 때문인지 증각은 선종의 유행을 일으켰고, 실상사도 계속 번창했다. 

이후 숙종 5년(1680)까지 실상사의 승려들은 실상사 안의 백장암이란 작은 전각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실상사 터에는 철불, 석탑, 석등 등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숙종 때 왕에게 승려들이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건물을 중건하였고, 이후 순조 21년(1821)에 다시 중건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고종 19년(1882) 근처 유생들이 숭유억불과 절터를 가로챌 목적으로 방화를 해서 또 홀라당 타버리고, 결국 고종 21년(1884)에 조촐하게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대한민국 국군과 공비들이 번갈아가며 점령하였지만, 다행히 월정사처럼 불타지는 않았다.

 

 


2. 실상사 목탑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발굴이 실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초석들의 한 변이 약 23.2m 정도의 크고 아름다운 목탑지가 발견되었다. 

이 정도 크기의 초석 면적은 황룡사 9층 목탑보다도 더 큰 정도라서 대단히 큰 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다가 칸 수도 정면 7칸 측면 7칸으로 황룡사와 같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기록은 전혀 없기 때문에 현재는 계속 연구중이다. 

남원은 현대의 광역시와 비슷한 통일신라의 5소경 중 하나일 정도로 당시 호남지방에서 손꼽히는 중요 도시였기 때문에 그런 남원의 고찰 실상사의 규모와 역할도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절은 아담하지만 웅장한 역사를 가진 실상사에 한번 가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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